• 최종편집 2026-04-03(금)
 
  • 남동풍 칼럼
[한선크로니클=남동풍 칼럼니스트] 지난 삼월과 사월, 그리고 오월을 지내오는 동안(3.1, 4.16, 4.19, 5.18),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것들은 이제 잊을 때도 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들 중 어떤이는 어느 신문에 '신물이 난다'고 써 대기까지 했지만, 대부분은 '이제 과거를 잊고 용서 하자'고 점잖게 타이르는 말투였습니다.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용서는 과거를 잊기 위해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다!”(remembering the past in order that it might be forgotten)라고 말했습니다. 망각하기 전에 먼저 기억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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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Alexander Dmitrievich Litovchenko(1835 - 1890)의 'Charon carries souls across the river Styx' 입니다. 뱃사공 카론(Charon)이 젓는 나룻배를 타고 다섯 강을 건너게 되는데, 이들 강에서 인간의 죄와 고통이 씻겨져 낫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망자가 저승으로 가려면 모두 다섯 개의 강을 건너야 한다고 합니다. 첫 번째 고통의 강 아케론부터 두 번째 비탄과 통곡의 강인 코키투스, 불의 강 플레게톤과 두려움과 증오의 강인 스틱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망각의 강 레테입니다. 망각의 강 앞에 다다르기 전에 먼저 기억의 강인 슬픔과 탄식, 또 불과 증오의 강을 건너야 한다는 겁니다.

 
늪으로 가득차 있어 거의 흐르지 않는 고통의 강을 건너며 자신의 깊은 고통을 천천히 씻어낸 다음, 얼음보다 차가운 물이 흐르는 비탄과 통곡의 강에서 모든 시름과 비통함을 내려놓게 됩니다. 세 번째 강인 불의 강에서 뜨거운 열기로 남아있는 감정들을 완전히 태워버린 다음 청금석(靑金石)과도 같은 검푸른 색을 띤 두려움과 증오, 우울함, 약속의 강을 건너야 하는데 이 강의 위엄은 인간은 물론 신들조차 두렵게 했다고 합니다. 망각의 강에 가기 전에 '기억'부터 하라는 준엄한 정화과정을 거치게 한다는 것이죠.
 
거꾸로, 인간은 이데아의 세계에서 현상의 세계로 추방되었을 때 먼저 레테의 강물을 마십니다. 그래서 이데아의 세계에서 살았던 모든 기억을 망각하게 됩니다. 이승에서 그랬던 것처럼 저승에서의 기억을 모두 지우고, 영혼이 새로운 육체 속에 들어가 다시 태어나기 위한 준비과정을 거쳐야 이 세상에 오게 된다고 보는 설도 있습니다.
 
레테는 ‘망각’이나 '혼수상태', '은닉' 또는 '망각의 강'을 신격화한 여신입니다. 그녀는 진리와 진실의 여신인 알레테이아와는 반대되는 속성을 가졌습니다. 그리스어 알레테이아는 레테와 같은 어원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알레테이아(alētheia)는 망각과 은폐라는 의미의 lēthē에 접두사 a를 붙여 '탈-은폐성'이라는 느낌의 말이 되었습니다.<깨어있음!>
 
우리는 정화와 기억의 과정을 다 거친 것일까요? 진실(알레테이아)이 다 드러나 지난 과거를 잊어버려야할 때가 온 것일까요?
 
이제 오월이 가면 '기억의 달(Memorial Day/Month)'이 옵니다. “용서는 과거를 잊기 위해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다”라는 틸리히의 말을 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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