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크로니클=전홍주 칼럼니스트] 40-50대 장년층은 대체로 유년기를 고불고불한 길에서 보낸 골목세대이다. 지금처럼 아파트나 현대식 주택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에 골목길은 아이들의 놀이터이고 동네 어머니들의 안마당이며 할머니들의 돗자리 노인정이었다. 이런 저런 과일이나 생선, 야채 등을 실은 트럭 앞에서 아이와 어머니, 할머니들이 반찬거리 흥정을 하던 그런 삶의 기반이 되는 생활현장이었다. 지금도 고층 빌딩숲에 가려진 도심 뒷 골목길을 걸을 때면 어린 시절 하교 길에 심심한 남자아이들이 같은 반 여자아이 집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가던 장난이 눈에 보인다. 동네 주택가의 골목길은 장년층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30-40대에게는 어릴 적 고향집 방문길 같은 느낌을 준다. 골목길은 넓은 도로보다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서 정겹다.
그런데 차로에서 멀리 떨어진 주택가 골목길은 밤이 되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특히 조명이 어두운 긴 고불고불한 골목길은 아동이나 여성들에게 두렵고 불편을 준다. 저 골목길 모퉁이를 돌아서면 바로 따스한 집으로 들어갈 수 있으려만.., 모퉁이에서 ‘짠’하고 나타나던 바바리맨, 늦은 밤 익숙하던 골목길이 무서워 버스정류장부터 하이힐(구두)을 벗어 손에 들고 집까지 뒤도 안돌아보고 뛰어가던 기억은 혼자 골목을 지날 때면 더욱 두려움을 갖게 한다. 어스름한 저녁이후의 골목길은 그 정겹던 ‘따뜻함’을 ‘두려움’으로 가리운다.
동일한 위험이라도 남성에 비해서 여성은 보다 더 위험하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여성들은 실제로 그러한 위험을 경험 할 확률(Actual perception of risk)에 비해서 잠재적으로 자신에게 일어 날 가능성(Predicted perception of risk)을 더 크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범죄 피해에 대한 두려움은 여성이 더 많이 느끼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남성의 위험체감 감소효과’가 존재한다(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아와 여성이 안전한 지역사회환경 조성방안, 2009).
전반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모든 공간에서 덜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으며. 특히 지하주차장, 공원이나 야외 및 공터, 집 근처 둘레길 등에서 안전감을 요구하고 있다.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자신의 공격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했을 경우, 보복의 위험성을 더 높이 평가하며, 육체적인 힘이 부족하거나 덜 공격적이라는 자신에 대한 고정관념에 의해 위험을 더 크게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인들은 자동차 사고나 음식물, 환경오염, 심각한 질병 등에서 위험을 지각하는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위험과 달리 여성과 남성이 느끼는 인식에 있어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범주는 성폭력(강간, 추행 등)으로 나타난다.
2022년 성폭력 안전실태 조사(여성가족부)에서 보면,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에 대한 10개 문항에서 전체 응답자 10명 중 2~3명은 성폭력 피해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남성 응답자의 경우 대부분의 문항에서 10% 내외였으나, 여성 응답자의 경우 모두 30%를 상회했고, 특히 ‘밤늦게 혼자 다닐 때 성폭력을 겪을까봐 두렵다’(63.4%), ‘집에 혼자 있을 때 낯선 사람의 방문이 무섭다’ (52.9%), ‘택시, 공중화장실 등을 혼자 이용할 때 성폭력을 겪을까봐 걱정한다’(51.0%) 등은 50%를 상회하고 있다. 모든 문항에서 여성이 느끼는 두려움이 남성에 비해 월등히 높았으며, 집이라는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에서, 택시, 지하철, 버스 등과 같은 대중교통에서 남성은 10명 중 1명이 두려움을 느끼는 데 반해, 여성은 10명 중 4~5명이 성폭력 피해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골목길은 서민들의 삶이 스민 곳이다. 도심이든 지역이든 골목마다 그 자체가 지닌 역사성과 스토리가 있다. 요즘 쇠락한 도심 뒷골목이 청년 창업인들이 만든 작은 기적으로 부활하고 있다는 기사들이나, 골목문화축제 등 각 지역의 특색을 살린 다양한 프로그램, 낙후된 골목길 담장에 주민과 자원봉사자가 함께 지역성을 살린 벽화조성을 통해 볼거리를 제공하는 골목길 환경 개선사업, 이미지글래스에 빛을 투사해 벽면이나 바닥에 이미지나 텍스트를 투영하여 각종 범죄예방과 주민 불안감 감소를 유도하는 로고젝트 사업 등, 사회 저변에서 움직이는 변화를 보니 골목 세대로서 반갑기 그지없다.
골목길이 어른에게는 향수를, 청년에게는 꿈을 실현하는 창업의 장소로, 청소년에게는 끼를 발산하는 공간으로, 어린이에게는 정겨운 놀이문화의 장으로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보행자들이 안전하게 활동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즉 골목길에 적당한 간격의 보행등 설치나 공간특성에 따른 조도 유지, 그리고 그늘진 곳, 움푹 들어간 곳, 보이지 않는 곳 등에서 연결이 끊어지지 않도록 사람의 관심과 조명이 가려지지 않는 여성친화적인 시선이 꼭 필요하다. 왜냐하면 낡고 고요한 골목길에는 오래도록 가슴 뛴 사람이야기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